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티스토리 뷰

군사/역사

이순신과 원균, 차이와 진실?

법률 소녀 2023. 12. 27. 09:30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임진왜란 조선수군의 두 장군 이순신과 원균. 그들은 같은 전쟁터에서 같은 적과 싸웠지만, 그들의 운명은 천지차이였습니다. 이순신은 불패의 명장이자 영웅으로 기록되었고, 원균은 치욕스런 패장으로 남았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글에서는 이순신과 원균의 전투력과 리더십을 비교하고, 그들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밝혀봅니다.

 

이순신과 원균의 전투력 비교

이순신과 원균은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의 대표적인 장수로서, 여러 번의 해전에서 일본수군과 맞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투력은 크게 다르게 평가됩니다.

 

원균 / 이순신 초상화

 

이순신은 지형과 조류, 날씨 등을 전술과 전략에 활용하여, 열세한 전력으로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반면, 원균은 무모하고 방자하게 싸워서, 우세한 전력임에도 패배를 맛봤습니다.

 

그들의 전투력의 차이는 한산도대첩과 칠전해전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순신의 한산도 해전에서 대승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이라는 전술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 해전이라고도 불리며, 일본의 수륙병진 계획을 좌절시키고 조선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 해전에서 왜선 59척을 격침하고 400여 명의 적을 사로잡았으며, 조선 수군은 전선의 손실이 없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대첩과 안골포 해전을 통해 임진왜란의 전세를 유리하게 바꾸었고, 조선의 위기를 구하였습니다.

 

 

원균의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

원균은 이순신이 모함으로 해군 지휘권을 박탈당한 후, 조선수군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수군의 재진출에 대비하여 부산포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수군은 조선수군과의 직접적인 접전을 피하고, 소규모의 선단으로 공격한 후 도망치는 ‘히트앤드런’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이러한 작전에 지쳐있던 조선수군은 심한 풍랑이 겹치자 완전히 녹아웃되었습니다. 원균은 무모하게도 지친 부하들을 이끌고 부산포로 돌진했고, 부산포 앞 좁은 수로에서 조선수군을 기다리던 일본군은 한꺼번에 대 선단으로 공격했습니다. 이순신이 없는 조선수군은 그들에게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해군의 집중공격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조선수군은 가덕도로, 또 거제도로 후퇴했습니다. 그러나 거제도에서도 왜군의 기습으로 수백 명이 전사하자 급기야는 칠천량까지 쫓겨갔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밤, 원균은 아예 보초조차 세우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시각 물샐틈없이 칠천량을 포위한 일본군은 새벽 화공을 앞세워 기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함선 100척에 거북선 5척 등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단으로 구성됐다던 조선 함대는 일본수군의 집중포화를 맞아 지리멸렬하면서 겨우 12척만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5000년 해군 역사상 유일한 패배를 불러온 장본인인 원균도 이곳에서 전사하고 만다.

 

 

 

이순신의 한산도, 안골포에서의 승리의 대첩과 정반대의 상황이 원균에 의해 벌어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요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과 원균의 가장 큰 차이는 적에 대한 정보 파악 능력, 지형과 날씨를 전투에 활용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한쪽에서는 일본 해군의 비참한 패배를, 다른 쪽에서는 한국 해군역사상 가장 처참한 패배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순신과 원균의 리더십 비교

이순신과 원균은 전투력뿐만 아니라 리더십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순신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부하와 백성을 아끼고, 자신의 책임과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반면, 원균은 모함과 방자하고, 부하와 백성을 버리고,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의 차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순신의 상하동욕과 배성과 부하를 아끼는 마음

이순신은 객관적 전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초인적 경지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철두철미한 준비와 전쟁터에서 구사한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전술전략, 제승 개념에 의한 정보전과 보급병참전에서의 승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자세 등이 그의 리더십의 요소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손자병법에서 필승조건의 하나로 말하는 상하동욕(上下同欲)을 갖췄다는 점입니다. 상하동욕이란 상급자와 하급자가 같은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힘을 합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순신은 부하들과 백성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정성을 보였고, 그들의 존중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부하와 백성을 아깝지 않은 목숨이 없었다고 말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꾸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순신의 말과 글에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긋나니.” 이순신은 자신의 삶과 목숨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쳤습니다. 그의 사랑과 리더십은 조선수군의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이순신 관련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