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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는 대한민국에서 개발을 시도한 최초의 무인항공기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공군의 개발 요구에 따라 1980년대 초 ‘솔개’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추진했으나 공군의 소요 취소로 중단되었다.

시험 비행에서 발사대를 떠나 이륙하고 있는 솔개.

우리나라에서 무인항공기 연구개발은 1977년부터 시작됐다. 공군은 1977년 4월 ‘기만용’ 무인항공기 개발을 국방과학연구소에 요구해 왔던 것이다. ADD는 그해 9월부터 사업에 착수했으나 보다 본격적인 개발은 1978년말부터로 보인다.

 

최초 작전요구능력(ROC)은 우리나라 기술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ADD는 공군과 수차에 걸친 협의를 통해 ROC를 현실적으로 설계가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했다. 여기서 추진기판은 터보제트엔진만 외국에서 구입 또는 공동개발하고, 무인항공기는 자체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ADD는, 기체 및 유도조종장치는 국내개발을, 추진기관은 영국의 MT사와 공동으로 300lbs급 터보제트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항공기 설계개발에 전혀 경험이 없던 ADD는 설계에 필요한 핵심요원을 영국 크랜필드대학 항공연구소 CIP(Crinfield Institute of Technology)에 파견하여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비행체 설계에 핵심이 되는 風洞 설치에 착수, 1979년 5월까지 초음속풍동과 삼중음속풍동을 확보, 각종 개발사업에 필요한 공기역학적 설계자료를 제공하였다.

 

이에 앞서 ADD는 1977년초에 관련 연구실을 발족시켜 연구소에서 개발되는 유도탄이나 로케트 등 비행체에 대한 시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국으로 파견된 설계팀은 영국의 기술지도에 힘입어 개념설계를 완성하고 귀국하여 1981년에 기본설계 및 상세설계를 완성하였다.

 

1981년 최초 비행시험에 대비, 시제품 제작에 착수한 ADD는 1982년에 선행시제기를 제작 조립하고 안흥시험장에서 비행시험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198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련의 비행시험은 동년 12월 이렇다 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솔개는 대한민국에서 개발을 시도한 최초의 무인항공기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공군의 개발 요구에 따라 1980년대 초 ‘솔개’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추진했으나 공군의 소요 취소로 중단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무인항공기 연구개발은 1977년부터 시작됐다. 공군은 1977년 4월 ‘기만용’ 무인항공기 개발을 국방과학연구소에 요구해 왔던 것이다. ADD는 그해 9월부터 사업에 착수했으나 보다 본격적인 개발은 1978년말부터로 보인다.

 

최초 작전요구능력(ROC)은 우리나라 기술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ADD는 공군과 수차에 걸친 협의를 통해 ROC를 현실적으로 설계가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했다. 여기서 추진기판은 터보제트엔진만 외국에서 구입 또는 공동개발하고, 무인항공기는 자체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ADD는, 기체 및 유도조종장치는 국내개발을, 추진기관은 영국의 MT사와 공동으로 300lbs급 터보제트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항공기 설계개발에 전혀 경험이 없던 ADD는 설계에 필요한 핵심요원을 영국 크랜필드대학 항공연구소 CIP(Crinfield Institute of Technology)에 파견하여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비행체 설계에 핵심이 되는 風洞 설치에 착수, 1979년 5월까지 초음속풍동과 삼중음속풍동을 확보, 각종 개발사업에 필요한 공기역학적 설계자료를 제공하였다.

 

이에 앞서 ADD는 1977년초에 관련 연구실을 발족시켜 연구소에서 개발되는 유도탄이나 로케트 등 비행체에 대한 시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국으로 파견된 설계팀은 영국의 기술지도에 힘입어 개념설계를 완성하고 귀국하여 1981년에 기본설계 및 상세설계를 완성하였다.

 

1981년 최초 비행시험에 대비, 시제품 제작에 착수한 ADD는 1982년에 선행시제기를 제작 조립하고 안흥시험장에서 비행시험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198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련의 비행시험은 동년 12월 이렇다 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시험 비행 중인 무인항공기 '솔개'.

한편 1982년 10월, 기만용 무인항공기 연구개발 필요성을 제기한 소요군인 공군은 개발 중인 무인항공기의 소요시기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검토과정에서 군은 당시 날로 발전하는 전자광학기술이 장차의 전자전 장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 아래 비행시험중인 ‘기만용 무인기’의 운영개념과 그 필요성을 재검토하였다.

 

결론적으로 소요군은 진행중인 사업을 중단할 것을 국방부에 건의하게 되었고, 국방부는 기만용 무인항공기 개발사업을 1983년 12월까지 종료할 것을 통보하였다. 이에 따라 기만용 무인항공기개발사업은 선행개발을 끝으로 사실상 종료되었다.

 

실제로는 당시 ADD 인력 강제 조정에 따른 연구인력 부족이 주원인 이었다. 다만 ADD는 사업종료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축적한 설계기술과 앞으로 연구개발에 필요한 경험자료를 축적할 목적으로 비행시험만은 계속할 것을 건의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그동안 개발에 참여하였던 기술진을 모아 시제기를 조립하고 지상 유도조종장비를 재점검하여 비행시험을 준비하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1984년 4월 20일, ADD 비행시험팀은 계획했던 대로 성능시험을 실시하여 40km 기본성능 확인 비행 및 기체 회수에 성공하였다. 무인항공기 개발팀이 성공적으로 비행시험을 완료함으로서 선행개발이 완료되고 사업이 종료되었다.

 

무인항공기 개발사업은 이와 같이 선행개발로 모든 사업이 종료되었으나 이때 연구소가 축적한 항공기 설계기술, 제작 및 기술경험은 그후 유사한 무인항공기나 유도무기 개발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국내 독자개발 항공기인 훈련지원기 개발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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