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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무기

M9 2.36인치 대전차로켓

법률 소녀 2022. 11. 22. 12:09

M9 2.36인치 대전차로켓 일명 바주카포, 1949년 주한미군 철수 때 인수

2.36인치 로켓 발사기는 제2차 대전 독일군이 최초로 개발해 실용화한 대전차 무기체계이다. 미국은 1942년에 이 같은 로켓발사기를 개발해 제2차 세계대전 말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일명 바주카포라고 불렀다.

육군은 1949년 주한미군 철수 때 이 장비를 인수했다. 6.25전쟁 중 초기 대전차화기로운용했다.

 ■ 제원

전장 49cm

중량 2kg

최대사거리 640m

포구속도 270m/sec

 

 ■ 관련 참고 기사 1

우리 군은 최초 전차를 운용하지는 못했지만 6·25전쟁 전까지 대전차 무기로는 1949년 주한미군 철수 시 인수한 2.36인치 대전차 로켓 1961문, 57㎜ 대전차포 95문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정식 제식 명칭이 M9 로켓 발사기인 2.36인치 대전차 로켓은 바주카(bazooka)포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바주카란 미국의 코미디언 밥 본즈가 쇼에서 쓰던 피리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겉모습이 피리와 비슷한 것에서 나온 애칭이다.

 

어깨에 견착해 사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사기가 가벼운 2.36인치 대전차 로켓은 대전차 고폭탄(HEAT)을 사용한다. 이 탄은 폭발로 형성된 고온 고압의 금속성 가스인 메탈제트를 좁은 면적에 집중시켜 장갑 관통 효과를 극대화한 탄종이다. 폭발 면적이 좁아 개방된 공간에 위치한 사람 등에게는 효과가 떨어지지만 장갑 관통 효과는 매우 좋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미 군사고문단이 "어떠한 적 전차도 파괴할 수 있다"고 공언하면서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에서 적 전차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신뢰성 있는 무기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자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1950년 7월 5일 미군 최초의 참전 부대인 스미스부대가 오산 북방의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 오리히 코나 중위는 2.36인치 대전차 로켓 22발을 T-34의 측면과 후면에 퍼부었으나 끄떡도 안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무적의 탱크라고 불린 킹 타이거 전차조차 측면 장갑을 관통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녔지만 T-34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T-34에 대한 2.36인치 대전차 로켓의 대응력이 이 지경이 되자 6·25전쟁에 참전한 미 육군24사단장 딘 소장과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1950년 7월 초순 워싱턴에 M20 3.5인치 대전차 로켓의 긴급 보급을 요청했다.

3.5인치와 2.36인치 대전차 로켓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가진 무기지만 구경이 큰 3.5인치 대전차 로켓의 장갑 관통 능력이 더 우수했다.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1950년 6월 개발이 끝났지만 양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던 상태.

하지만 미군 당국은 신속히 반응했다. 7월 3일 처음 생산돼 10일 대전에 도착, 12일 미24사단 예하 보병중대의 화기소대에 배치됐다.

최초로 전과를 올린 무대는 대전 전투. 7월 20일 밤 전투 현장을 시찰하던 미24사단 34연대장 뷰챔프 대령이 북한군의 T-34와 조우한 것.

T-34의 기관총 사격에 뷰챔프 대령이 탄 지프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뷰챔프 대령은 사단 공병대대의 3.5인치 대전차 로켓조를 이끌고 용감히 응전했다. 단 한 발에 T-34가 파괴되면서 화염이 치솟았다. 3.5인치 대전차 로켓이 T-34를 파괴할 수 있음을 실전에서 최초로 증명한 것이다.

우리 군이 3.5인치 대전차 로켓으로 최초의 전과를 거둔 것은 1950년 8월 대구 북방 가산전투. 8월 초 육군1사단은 미군으로부터 3문을 최초로 인수했다.

1사단은 예하 12연대에 사수·부사수·탄약수 2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대전차 특공조 세 개를 편성, 일주일 동안 특별훈련을 거쳐 8월 9일 최초로 실전에 투입했다. 12명의 대전차 특공조는 특공대장 김성룡 대위의 지휘 아래 대구 북방 석적부락 부근에서 단숨에 적 전차 4대를 파괴하고 1대를 노획했다. 개전 이래 끊임없이 괴롭혀 온 전차 공포증을 날려 버린 통쾌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1971년,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번개사업의 일환으로 국산화됐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3.5인치 로켓도 1980년대 이후 점차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66㎜ LAW(경대전차 무기) 등 신형 대전차 무기의 출현으로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예비군 무기로 전환된 것이다.

■ 관련 참고기사 2

‘T-34 파괴한 건 2.36인치 대전차로켓’

"그때 갖고 나간 건 3.5인치가 아니라 2.36인치예요."

지난달 20일자 ‘Old & New’에 ‘2.36인치·3.5인치 대전차로켓’이 보도된 후 데스크에 전화가 걸려왔다.

김점곤 장군이다.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김 장군은 6·25 당시 중령의 계급으로 1사단 12연대의 부연대장과 연대장을 지내며 전투를 지휘했던 장본인.

3.5인치 대전차로켓 운용 사례로 기자가 제시한 1950년 8월 9일 1사단 12연대의 전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육군본부가 1979년 12월에 간행한 ‘소부대 전례 8집 - 공격작전편’에 실린 ‘3.5인치 로키트 특공대의 전공’에 전투 내용을 인용했다. 현재까지 쓰여진 전사, 특히 소부대 전투에 관한한 이때 발행된 ‘소부대전례’보다 구체적 내용이 실린 자료는 거의 없다고 기자는 판단했다.

김 장군에게 이 부분을 언급하자 "전사 책에 나온 것이 다 맞지는 않더라"며 정황을 더 설명했다.

"당시 3.5인치 대전차로켓을 지급받은 것은 맞는데, ‘특별 취급’해야 할 ‘비밀 신무기’라며 아직 쓰지는 말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어요. 지시가 지시인지라, 특공대장을 자원한 김성룡 대위와 대원들은 2.36인치를 들고 나갔지요."

김 장군은 당시 김 대위(대령 예편으로 알려진)가 적 T-34전차를 파괴한 후 1대를 노획했다며, 후에 이 전차를 대구 시내에 전시해 국민들에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양시켰다고 말했다. 또 서울 여의도에 전시된 후 지금은 육군사관학교에 있을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기자는 김 장군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 자료를 찾았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1990년에 발행한 ‘다부동전투’에는 이 부분에서 2.36인치 대전차로켓을 갖고 나갔다고 언급돼 있어 김 장군 증언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하지만 전투 상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고, 예비역 단체를 통해 확인한 전화번호로 김성룡 특공대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틀린 번호여서 추가적인 전황을 들을 수 없었다.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 2.36인치 대전차로켓으로 T-34를 격파했다는 증언은 처음이었다. 사실 2.36인치 대전차로켓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무적의 탱크라고 불리던 킹 타이거 전차조차 측면 장갑을 관통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이 때문에 왜 스미스부대는 22발을 쏟아붓고도 T-34를 파괴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12연대가 T-34를 파괴한 것은 2.36인치 대전차로켓에 의한 것이었다’를 분명히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번 김 장군의 증언, 그리고 전사를 통해 기자가 새삼 깨닫은 것은 전투에서 무기체계의 성능적 우위도 중요하지만 운용 장병들의 높은 전투의지와 프로다운 전투기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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